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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소개

심리학자 소개 5 / 에릭 홈부르거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학자소개>

에릭 홈부르거 에릭슨(덴마크어: Erik Homburger Erikson, 1902615~ 1994512)은 덴마크계 독일인, 미국인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인간의 사회성 발달이론으로 유명하고 '정체감 위기'(Identity Crisis)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주요 업적은 인간의 전 생애에 걸친 발달 심리학(life span developmental psychology)을 다룬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덴마크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에릭 에릭슨은 어린 시절부터 평생에 걸쳐 정체감에 대한 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다. 1902615일 태어났고, 그의 친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고, 그의 어머니는 3년 뒤에 유대인 의사와 재혼했다. 에릭 에릭슨은 성인이 된 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 카를라 아브라함센(Karla Abrahamsen)은 코펜하겐의 유명한 유대인 가족 출신으로, 카를라의 어머니인 헨리에타(Henrietta)는 카를라가 13살 때 사망하였다. 아버지 요세프(Josef)는 말린 상품을 파는 상인이었다. 카를라의 오빠들인 에이나르, 니콜라이, 악셀은 지역 유대인 자선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러시아에서 온 궁핍한 유대인 이민자들에게 식량을 공급해 주었다.

 

카를라는 에릭 에릭슨이 태어난 이후 간호사가 되기 위해 카를스루에로 이주하였고, 1904년 유대인 소아과 의사인 테오도어 홈부르거(Theodor Homburger)와 결혼하였다. 1909년 에릭 에릭슨의 이름은 '에릭 살로몬센'에서 '에릭 홈부르거'가 되었고, 에릭 에릭슨은 1911'에릭 홈부르거'로서 법적으로 계부의 아들이 되었다.

 

자아정체감 발달은 에릭 에릭슨의 삶과 이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으로 인식된다. 어린 시절과 성년기 초기의 이름은 '에릭 홈부르거'였으며, 부모는 에릭 에릭슨의 출생에 관한 자세한 사항을 비밀로 하였다. 유대교 가정에서 자란 푸른 눈을 가진 금발의 소년이었고, 사원 학교에서는 노르만인이라며 괴롭힘을 당했고, 문법 학교에서는 유대인이라며 놀림을 당했다.

 

에릭슨은 미술 학생이면서 교사였다. 빈의 사립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를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에릭슨은 정신분석학을 알게 되었고, 이 경험으로 정신분석학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빈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정신분석학을 배우면서 몬테소리 교육법을 아동 발달에 초점을 두어 공부하였다.

 

에릭슨이 1933년 빈 정신분석 연구소를 졸업한 이후, 나치가 독일에서 권력을 잡기 시작하자, 아내와 함께 덴마크로 간 뒤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보스턴에서 아동 정신분석학자가 되었다. 에릭슨은 매사추세츠 일반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과 저지 베이커 가이던스 센터(Judge Baker Guidance Center), 하버드 의학대학원과 정신과 병원에서 일하면서 우수한 임상 의학자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1936년 에릭슨은 예일 대학교에 들어가 인간관계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의학대학원에서 강의했다. 에릭슨이 아동분석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예일대학에서 파트타임 교수로 채용을 하였다. 이를 위해 이전까지 사용하던 이름 홈부르거(Homburger)를 버리고 미국 시민권자를 취득하면서 자신의 성을 Erikson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계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중간이름(middle name)Homburger로 표기하였고, Erikson이라는 이름은 자신에게 Erik이라는 이름을 준 자신의 생부를 기리기 위해 Erik이라는 이름 뒤에 아들(son)을 덧붙였다. 예전 유럽인들에게는 성은 귀족들만 가지는 것이었고 평민들은 딱히 성이 없었고 다만 '아무개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아버지의 이름 뒤에 son(혹은 이와 비슷한 각 나라의 용어들 'sen' )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Williamson, Anderson, Peterson 등등) Erik도 그와 비슷하게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보여진다.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본인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인다. 생부와 계부의 흔적을 이름에서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을 바꾸니 가장 좋아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에릭슨의 세 아이들이었는데 이들은 학교에서 햄버거(Hamburger)라는 별명으로 불리었기 때문에 더이상 햄버거라고 불리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다. 에릭슨이 성을 바꾼 여러 원인들 중 하나가 사실 아이들 때문이었다. 사우스다코타주의 수족(Sioux) 거주지에서 몇 년간 아이들을 관찰한 뒤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교수가 되어 아동복지연구소에 가입하고 의사로서의 개인 영업도 시작하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에릭슨은 유록족(Yurok) 인디언의 어린이들을 연구하였다.

 

에릭슨은 자신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아동기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를 출판한 이후인 1950, 충성 선서(loyalty oaths)에 서명하도록 요구한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떠났다. 10년간 매사추세츠주의 Stockbridge에 있는 정신의학 치료시설인 Austen Riggs Center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여기서 감정적인 문제를 가진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였다.

 

<자아와 발달이론>

에릭슨의 가장 뛰어난 발견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주장한 심리성적 발달의 다섯 단계를 부인하고 여덟 단계를 주장한 것이다. 에릭 에릭슨은 모든 인간은 온전한 발달에 이르기까지 특정 개수의 단계를 지닌다고 보고, 태어나서 죽기까지 인간이 겪게 되는 8단계를 이론화하였다.

 

에릭슨은 프로이트의 성기기(性器期)를 청년기로 바꾸었고, 성년기의 세 가지 단계를 추가했다. 아내 요안 세르손 에릭슨(Joan Serson Erikson)은 자신이 죽기 전에 남편의 모형에 9번째 단계(노년기)를 추가하여 서구 문화의 증가하는 평균 수명을 염두에 두었다.

 

에릭슨은 또한 인간에게 있어 '이드(id)의 역할'보다 '자아의 역할'을 중시한 자아 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에릭슨에 따르면, 어린이가 사는 환경은 성장과 조정에 결정적이고, 자기 인식과 자아 정체성의 원천이 된다. 1969년에 출판한 책인 간디의 진실은 에릭슨의 이론을 생애 주기의 후기에 적용시킨 책으로, 에릭슨에게 퓰리처상과 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를 안겨 주었다.